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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라이터 (조영남 사태로 생각해본 대작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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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사건이 이슈이다. 조영남이 그동안 자신의 작품이라고 판매해왔던 수천만 원의 그림들이 알고 보니 본인이 그린 것이 아니고, 어떤 젊은 작가에게 10만 원, 20만 원을 주고 주문 제작한 것이라는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이에 조영남은 ‘이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 미술계의 관행으로 대부분이 이렇게 작품을 제작한다’라고 인터뷰를 했기에 더욱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미학 교수인 진중권 씨가 ‘사실 제작 방식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다. 현대 미술에서 콘셉트를 정한 작가와 실제 작품을 제작하는 사람이 다른 것은 흔하다.’라고 언급하면서 사람들은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작가는 창작의 중심에 선 사람이지, 생산의 중심에 선 사람이 아니다.



나는 미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진중권 교수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는 안다.


미술에서 작가란 직접 생산을 하는 기술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관점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현대 미술 이전, 아주 오래 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로뎅 등 수많은 작가들도 다 견습생을 두고 작품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다. 진중권 교수의 말에 따르면 앤디 워홀은 심지어 ‘나는 그림을 직접 그리는 사람 따위가 아니다’라는 말까지 했다니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즉, 작가는 영화감독이나 프로듀서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작품의 시초가 되는 아이디어를 창작해내고, 본인 머릿속의 예술 작품이 그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작품 제작(생산) 과정을 관리 감독하고 마무리하는 사람 말이다.


이런 비슷한 경우는 사실 미술계 외에도 많다.


최현석 셰프도 바쁜 방송 활동으로 인해 식당에 문제 생기는 거 아니냐고 묻는 질문에 ‘본인이 창작한 검증된 레시피에 따라 숙련된 직원들이 요리를 만들고 있다. 나는 식당에 출근했을 때, 지정된 레시피를 잘 수행했는지, 마무리 스타일링이 완벽한지 최종 점검하는 역할이며, 그 조차도 동료가 잘 해준다. 따라서 식당 운영에는 지장이 없다.’라고 대답했다.


그 외에도 스텝진들이 지시한 대로 다 준비해놓으면 마지막에 나와서 셔터만 누르고 사라지는 사진작가. 간호사들이 몇 시간에 걸쳐서 다 준비해놓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서 아기를 받는 산부인과 의사 등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요리사, 사진사, 의사, 그리고 지시만 내리는 영화감독 등의 전문가들이 본인의 손으로 제작 과정을 직접 수행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도 그들의 자질을 의심하지 않는다.


미술도 마찬가지로 꼭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가 완성하지 않았다고 해서 작품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 있다.


지시하는 사람이 창작의 중심에 있을 것, 제작 전반의 모든 과정을 잘 이해하고 ‘구제적으로’ 지시, 감독할 능력이 있을 것. 이 두 가지가 그것이다.


요리에 빗대 말하자면, 셰프의 레시피대로 셰프가 설계한 요리 과정 하나하나 고대로 요리가 완성되면 셰프의 요리가 맞지만, 고참 요리사가 후배 요리사에게 ‘뜨뜻하고 매콤한 요리 만들어 와’라고 지시하고, 요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심도 두지 않는다면, 완성된 요리는 고참 요리사의 것이 아니라 후배 요리사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고스트 라이터 vs 스탭



작가가 직접 생산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를 의미할 뿐이라면, 조영남은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것일까?


왜 사람들은 조영남에게 '고스트 라이터' 의혹을 거두지 않는 것일까?


조영남이 고스트 라이터를 이용하여 대중을 기만했는지 사실 쉽게 판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러 세부 사항을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스트 라이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작가의 작품 제작을 돕는 이들은 예전에는 견습생이라고 했고, 지금은 크루, 혹은 창작 집단, 어시스트, 스탭 등등으로 부른다.


나는 오늘 작가의 작품을 도와주는 이들을 스탭이라고 명칭 하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이 영화 1편, 미술 작품 1개, 음악 1곡을 위해 모였다가 기약 없이 헤어지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어떤 종속적이고, 안정적인 느낌의 단어보다는 냉정한 느낌의 스탭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스탭은 고스트 라이터와는 다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모든 이들이 스텝의 존재를 안다.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작품을 구매하는 이들 모두가 스텝의 존재와 제작 과정 전반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런 작품 제작에 참여한 것이 하나의 경력으로 인정받아지기에 당당하게 스텝 본인의 포트폴리오에 기재하여 스탭 개인의 다음 작품에 발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여러 전문적인 배움과 함께 생계를 꾸릴 돈도 벌 수 있고,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가 인정하는 작품에 참여했다는 자부심이 들 것이다.


하지만 고스트 라이터는 다르다. 먼저 작가가 그 존재를 숨긴다. 작품을 감상하거나 구매하는 대중에게 본인이 한 것인 양 행동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본인의 이름값을 더 올리고, 거짓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것이다. 또 고스트 라이터 역시 본인의 경력에 이런 사실을 올리지 못한다. 다 비밀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스트 라이터에게는 배움이 없다. 일단 의뢰한 작가가 실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영남은 스탭 혹은 견습생을 둔 것일까? 아니면 고스트 라이터를 고용한 것일까?


이것은 경찰 수사와 함께 나보다 더 전문적인 분들이 판단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아마 대중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렸을 것이고...



음악, 미술 그 외의 수많은 분야마다 있을 ‘조영남’ 같은 사람들이 없어지기를



작가가 아이디어를 만들고, 스탭진이 작품을 완성하는 시스템은 좋은 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작가의 뛰어난 예술 작품을 더 효율적으로 완성할 수 있다. 비서나 실무진이 없는 사장은 힘에 부치는 것처럼 당연히 작가에게도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스탭진에게도 좋은 기회가 분명하다. 예술가에게 유독 척박한 사회에서 생계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좋은 작가로부터 배움도 얻고, 본인의 프로필에 경력까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스트 라이터를 이용하면서 스탭이라고 우기는 어두운 관행에 있다.



조영남이 떳떳하고 당당하게 ‘미술계의 관행이다’라고 말한 이유는 아마도 그만큼 많은 작가들이 스탭의 가면을 쓴 고스트 라이터를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고스트 라이터와 스탭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에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를 수도 있다.


사실은 나도 스탭의 가면을 쓴 고스트 라이터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제의를 한 그 사람의 너무나 당당하던 태도이다. 그는 진짜 내게 기회를 주는 것인 양 웃으며 손을 내밀었었다.


작품 크레딧에 내 이름도 못 올리고, 어디 가서 내가 참여한 작품이라고 말도 못 하는데, 심지어 돈도 어처구니없을 만큼 적게 준다면서 말이다. 나는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그 유명 작곡가의 제의를 거절했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진심으로 황당해하며 어리둥절해했었다.


“왜? 유명인의 곁에서 기회를 얻는 것이 좋지 않아? 너 바보니?”라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그 사람이 정말 진심으로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하는지 모르는구나라는 것을 알고 더 비참했었다.


오늘의 내가 더욱 속상한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 여러 분야의 젊은 지망생들이 동전 몇 닢의 유혹에,

조영남이 말하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 ‘관행’이라고 하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열정 페이로 불리는 노동착취이며, 대중들을 속이는 기만행위이기 때문이다.


떳떳하다면 스탭의 존재를 예전에 미리 알렸어야 하고, 여러 서류에 이름을 올려줬어야 하고, 그에 합당한 적어도 최저시급 이상의 급여 및 작품의 성공에 따른 인센티브까지 주었어야 한다.


이런 관행은 현재 미술, 음악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장이 축소되고, 경쟁이 치열해진 결과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행위가 기만행위이며, 노동 착취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이슈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고스트 라이터의 관행이 없어지면 좋겠다.




글, 작성 : 이그나이트, 성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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